키다리아저씨 한기범, 농구로 전하는 사랑이야기 📷 ▲세상에 진 빚, 이제 내가 갚을 때 10일 오후 4시 반. 광화문에 위치한 한 까페에서 한기범 씨를 만났다. 한 씨는 오는 19일 열리는 희망농구올스타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씨가 본인의 이름을 따 설립한 ‘한기범 희망재단’에서 주관하는 이번 올스타전은 김주성, 양동근, 함지훈, 윤호영 등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총출동 할 전망이다. 지난해에 이어 2번째 열리는 이번 대회는 어찌 보면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제외하고 농구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더군다나 이번 행사로 인한 수익금 전액은 어린이 심장병 환자의 수술비를 위해 쓰인다. 그가 이런 뜻 깊은 행사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제가 심장병 수술을 2번이나 했어요. 2000년에 한 번 하고, 2008년에 한 번 했죠. 저는 심장병이 걸려서 한 게 아니에요. 예방 차원에서 했죠. 제 남동생이 심장병으로 죽었거든요. 저희가 5남매인데, 검사를 해보니까 저랑 여동생도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을 하게 됐죠.” 한 씨의 말에 의하면 키가 큰 사람들 중 상당수가 심장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 1년에 10cm씩 키가 자라잖아요. 키는 갑자기 자라는데, 내장기관이 그걸 못 따라가는 거예요. 대동맥 부분이 풍선처럼 늘어나는데, 그러다 죽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후배도 둘이나 죽었어요. 농구나 배구 선수들이 이런 증상이 많데요. 제가 방송에서 이걸 많이 알렸어요. 갑자기 그러는 게 아니고, 서서히 온대요. 1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돼요. 저희 후배들한테도 꼭 검사를 받으라고 얘기해줬죠.” 몸소 심장병의 위험을 체험한 한 씨는 그 이후로 인생이 바뀌게 됐다. “건국대학교 송명근 박사님이 수술을 해주셨어요. 커버수술이라고 하는데, 심장수술의 신기술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수술을 2번이나 했는데, 지금도 농구를 1시간씩 하고, 등산을 해요. 세상에 그런 수술이 어디 있어요. 자기 심장의 판막을 성형을 해서 그대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2번째 수술을 받을 땐 수술비가 없었어요. 그래서 심장재단에 가서 부탁을 했는데, 어느 단체와 연결이 돼서 수술을 받게 됐어요. 이게 다 빚 아니겠어요. 이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한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다. 평생 농구만 해온 그에게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예전에 공기청정기나 신발건조기 등을 만드는 친환경 회사를 다닌 적이 있어요. 그 회사가 양주에 있었는데, 다니다보니 의정부의 안병용 시장님을 알게 됐어요. 알고 보니 대학교 선배님이시더라고요. 담소를 나누던 중에 시장님께서 ‘홍명보 자선 축구경기’를 하는데, 농구는 못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농구라고 못 할 것 없죠.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까짓것 내가 하지 해서 기획을 하게 됐어요.” 📷 ▲달라진 외모, 인생이 바뀌었다 한 씨는 과거 선수 시절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이 더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바로 외모다. 뒤로 넘겨 길게 기른 머리와 콧수염. 선수시절 보다 훨씬 세련된 멋을 풍긴다. “예전부터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어요. 근데 머리숱이 없어서···. 제가 모발 이식을 해서 성공한 사례에요(웃음). 제 이미지가 순한 이미지였어요. 선수 때는 죽기 살기로 해도, 눈 꼬리가 쳐져서 더 그래보였죠. 센터면 몸싸움도 좀 거칠게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러다 외모부터 변화시켜보자 했죠. 수염도 길러보고, 머리를 빡빡 깎아보기도 했어요. 방송을 하면서 변신에 성공한 것 같기도 해요. 머리를 심으니까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엔 팔에 타투도 한 번 새겨보고 싶고, 외모가 바뀌니까 인생이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엔 사람들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사람들도 막 만나고 싶고, 더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재단을 운영하려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도 좀 해야 하는데,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꿨죠. 이제는 조르기도 잘 해요. 후원 좀 해달라고요(웃음)” 한 씨가 처음부터 이러한 생활을 꿈꿨던 건 아니다. 그도 선수 은퇴를 했을 땐, 지도자로서의 꿈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는 포지션별 전문 코치가 나올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 센터 전문 코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미국에 있는 센터 플레이 책자를 보면서 공부도 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죠. 근데 가까이 계시던 한 감독님께서 그런 애기를 하시더라고요. 사람이 순하고 해서, 선수 장악 능력은 좀 부족하지 않겠느냐고요. 저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업으로 돌아서게 됐어요. 악에 받쳐서 했으면, 지도자로서의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절 잘 아는 분이 말씀 해 주시니까, 빨리 마음을 바꾸게 됐죠.” 사업가로서의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하는 일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그 땐 키 크기 열풍이 불었어요. 건강식품을 홈쇼핑에 팔았었는데, 정말 잘 팔렸어요. 근데 생각만큼 돈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알고 보니 계약 내용이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제대로 보고 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런 쪽으로 좀 약하다보니···. 실패를 경험했죠.” 한 씨는 중앙대와 구로고를 거치며 잠시 지도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중앙대 코치 시절 김태환 감독을 보좌하며 중앙대를 대학 최강으로 이끌기도 했다. 당시 중앙대에는 김주성, 송영진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그 때 주성이한테 제 노하우를 다 전수해줬어요. 주성이가 하도 골밑에만 있어서 밖으로 좀 나오라고 했죠. 지금은 주성이가 슛을 잘 쏘지만, 대학 땐 슛을 잘 안 쐈거든요. 지금 던져봐야 프로에서 득점이 된다고요. 블록슛 연습도 많이 시켰어요. 세게 치지 말고, 톡 건드려서 잡아내라고요.” 📷 ▲훗날 해외어린이들 돕고 싶어 이번에 열리는 올스타전은 지난 해 열렸던 올스타전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 한 번 대회를 치러보면서 노-하우도 쌓이게 됐다고 한다. “작년에는 행사가 미흡하다는 말이 많았어요. 비용을 아끼려고 진행을 저희가 했거든요. 올 해는 대행사에 맡겼어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요.” 쓴 소리도 들은 첫 행사였지만,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첫 번째 행사가 될 것이다. “제대로 못 한 부분도 있지만, 나름대로 뿌듯했어요. ‘내가 이런 걸 다 했구나’ 하는 생각. ‘예전에 사람 만나기 싫어하던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내가 갈 길이 이거라고 생각했죠. 올 해만 아니라 꾸준히 해야겠다고요.” 작년 대회에서는 선수시절 한 씨와 함께 뛰었던 많은 동료들이 참여했다. 허재, 김유택, 강동희, 유도훈, 문경은, 김영만, 전희철 등 시대를 풍미했던 올드 스타들이 총출동 했다. 반면 이번 올스타전은 멤버 전원이 현역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한 씨는 이번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이상범 대표팀 감독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대표팀에 다 들어가 있더라고요. 오전에 훈련을 하고, 오후에 행사에 참가해줄 수 없냐고 부탁했죠. 다행히 이 감독이 흔쾌히 요청을 들어줬습니다.” 이게 걸음마 단계를 하고 있는 한기범 희망재단. 초짜인 그로서는 알아야할 점, 배울 점들이 많다. “맨땅에 헤딩 하듯 시작해서 재정적인 부분이 가장 어려워요.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자선이란 게, 나눔이란 게 어떤 건지 잘 몰랐어요. 어떤 분께서 계속 후원받아서 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남한테 도움을 주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니까요. 저희 같은 경우엔 키다리 쇼핑몰이라고 해서, 스포츠 용품을 판매해요. 자생사업이죠. 두 번째는 ‘한기범 농구교실’이에요. 지금보다 더 확대 시켜서 방과 후 수업까지 해볼 생각이에요. 우리나라에 농구나 축구를 가르칠 인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강사를 키우는 게 저희 목표에요.” 현재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선배의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는 ‘한기범 희망재단’. 총 직원이 4명으로 아직까진 미약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꿈은 크다. “나중에는 해외로 나가고 싶어요. 저흰 도움을 받았으니까,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사람이 돈 벌어오라고 하기도 하는데, 남을 위해서 이렇게 산다는 게 저만의 권리고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고아원에 가서 농구공도 가져다주고, 하루 종일 농구도 해요. 이런 일이 예전엔 귀찮고 싫었어요. 근데 그게 조금씩 좋아지더라고요. 아이들이 밝게 웃는 걸 보면 좋아요. 전 아직 100%의 기쁨은 못 느껴봤어요. 조금씩 일을 하면서 그걸 알 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꼭 성취해보고 싶어요. 맛을 보고 싶어요.” 일주일 전 생후 7개월 된 여자 아이의 심장병 수술을 시켜줬다는 한 씨의 얼굴엔 보람찬 표정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통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있는 한기범 씨. 그의 의도대로 그의 사랑이 농구를 통해 어려운 아이들에게 전달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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