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뉴시스】김희준 기자 = 왕년의 농구 스타 한기범(50)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이제 남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다. 한기범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기아자동차 농구단에서 뛰며 한국을 대표하는 센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207㎝의 신장을 앞세워 기아자동차가 자랑하는 고공농구의 '핵'으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 구로고와 중앙대 농구팀에서 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던 한기범은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다. 우성으로 유전되는 선천성 질환의 일종인 마르판 증후군으로 2000년과 2008년 두 차례 심장수술을 받았다. 사업 실패까지 겹쳐 인생의 나락을 경험해야 했다. 건강보조식품 사업 실패로 돈이 한 푼도 없어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을 받아 2008년 두 번째 심장 수술을 받은 한기범은 이후 '키다리 아저씨'로 변신했다. '희망농구 올스타'라는 자선경기를 개최하면서 재단을 설립한 그는 2012년 9월 사단법인 '한기범희망나눔'을 설립해 대표를 맡아 생명나눔·희망나눔·건강나눔·웃음나눔·스타나눔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심장병을 가진 어린이와 다문화 가정 어린이, 농구 꿈나무 후원 사업 등이 '한기범희망나눔' 사단법인의 주된 활동이다. 무료 농구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시행착오 속에 2011년 5월5일 처음으로 시행한 희망농구 자선경기는 벌써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17일 오후 2시30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IBK기업은행과 함께하는 희망농구올스타 2014'가 펼쳐진다. 한기범은 "2008년 두 번째 심장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사업 실패로 집이 넘어가는 등 아무 것도 없던 때였다. 그 때 심장재단의 도움을 받았다"며 "그것이 마음의 빚이었다.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의정부시장님이 지원해줘 희망농구 자선경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신이 '키다리 아저씨'로 변신해 계속해 재능나눔을 하는 것은 농구계 후배들을 향해, 사회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기범은 "후배들이 아직 기부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인기를 누리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이같은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후배들을 선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재능나눔을 했으면 좋겠다"는 한기범은 "'나눔은 특권이다'는 말을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돈이 많든, 피아노를 칠 수 있든, 농구를 할 수 있든 그것을 가지고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만의 '특권'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낌없이 베풀고 있는 한기범은 더 큰 목표를 갖고 있다. 한기범은 "한기범희망나눔이 가장 많은 재능 나눔을 하는 법인이 됐으면 좋겠다. 후원금은 한계가 있으니 사단법인이 자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고 전했다. 그는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나눔 활동을 하고 싶다. 내가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오지를 가장 많이 다녀왔다. 그런 곳의 실상을 직접 봤다. 그런 곳에 가서도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목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는 한기범은 "농구는 나의 인생이고, 나눔은 희망이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한기범 대표와의 일문일답 - 벌써 6회째인데 처음에 희망 농구 올스타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내가 심장수술을 두 번 했다. 2000년과 2008년에 했다. 키가 크고, 손 발이 길고, 눈이 안좋은 외형적인 특징을 가진 마르판 증후군 탓이다. 난치병은 아니지만 희귀병이다. 이것이 유전이다. 아버지가 1980년대 초에 수술 받으시고 1년 만에 돌아가셨다. 당시에는 유전이 된 줄 몰랐다. 그런데 동생이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갔다. 그래서 검사를 받으니 마르판 증후군이라고 했다.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검사를 받게 됐다. 다행히 선수 생활 중에 나타나지 않고 은퇴한 뒤에 마르판 증후군이 나타났다. 2008년 두 번째 수술을 할 때 사업상 최악의 상황이었다. 집도 넘어가고, 아무 것도 없을 때였다. 수술비가 없어 심장재단에 문의했는데 집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 조건이 됐다. 그래서 심장재단이 연결해줘 단체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받게 됐다. 그것이 마음의 빚이었다.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의정부시장님과 대화를 하다가 홍명보자선축구대회 이야기가 나왔다. 의정부시장께서 '축구는 있는데 농구는 이런 것이 없냐'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서 후배, 친구와 이야기를 했더니 축구보다는 하기 수월할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그런 계기가 있어 희망농구 자선경기를 시작하게 됐다. 경제적, 육체적 고통을 느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내가 가진 재능인 농구를 가지고 하자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 은퇴 후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는데 가장 힘든 시기를 꼽자면 언제였나. "수술과 사업실패가 겹쳤던 때다. 인생의 나락까지 떨어졌었다. 집도 넘어가고 사업도 안됐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도 없었다. 한꺼번에 이런 것을 겪으니 걷잡을 수 없었다. 당시에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를 닮아서 병이 나타날까봐 낙태도 제안했다. 그 때 아내가 나를 안닮을 것이라고 위안을 줬다. 당시가 정말로 힘들었다. 앞으로 검사를 해야겠지만 첫째도, 둘째도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어떤 것이 가장 힘이 됐나. "홈쇼핑에 키 크는 영양제를 팔았는데 잘 됐다. 돈을 벌다보니 주위에 사람이 모였다. 내가 귀가 얇은 탓인지 이것저것 손을 댔다. 그러다가 실패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가 큰 힘이 됐다. 성격이 혼자 헤쳐나가는 스타일이다.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기가 싫었다. '다시 일어서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와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 아는 분 회사에서 영업도 했다. 그러면서 다시 일어났다." - 희망농구자선경기를 하다가 한기범 희망나눔이라는 사단법인까지 설립하게 됐는데. "우리가 돈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의정부시장님을 알게 돼 자선농구대회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운동 선수들이 추진력 하나는 좋다. 하다보니 의정부시장님도 최소 비용을 지원해주셨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했다. 시장님이 소개해주시면 가서 후원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한기범희망재단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거기서 시작을 했다. 그러면서 만든 재단이 보건복지부 산하로 해서 사단법인 허가를 받게 됐다." - 스타로서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후원 요청을 할 때 처음에는 힘들었을 것 같다. "힘들었지만 사업을 실패해 나락으로 떨어져봤으니 후원 요청하는 것은 별 것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뛰었다. 일반인과 내가 요청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나는 알려진 사람이라 수월한 면이 있었다." - 6회째 대회를 하는데 기억이 남는 것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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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11년 5월5일에 실시한 첫 대회다. 그 때 돈을 아낀다고 행사팀을 부르지 않고 우리끼리 하려고 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이런 것을 해봤겠는가. 변수가 엄청나게 튀어나왔다. 그래서 3시간이나 시작이 지연됐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후 전문 행사팀에 맡겼다. 두 번째부터 도움을 많이 주셔서 하기 쉬웠다. 첫 번째에는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가장 힘들었고, 기억에 남는다. 당시 3시간이나 시작이 미뤄져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웃음).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 올해는 대회 시기 때문에 고민이 됐을 것 같은데. "1년 전부터 계획해놨지만 세월호 사건 때문에 미뤄야하지 않겠나 고민했다. 여러 행사가 취소돼 고민이 됐다. 주변 분들께 문의했더니 좋은 일이고, 많이 알려야 한다고 용기를 주셨다. 하지만 역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던 만큼 추모하는 마음을 담기로 했다. 추모하는 행사도 포함했다. 일단 묵념을 한다.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10대 서예가 중 한 분이 살아 계시는데 그 분이 오셔서 글씨를 써주신다. 그 분이 써주시는 동안 세월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읽을 예정이다." - 가장 도움을 많이 주는 농구계 후배나 동료는 누구인가. "현역 감독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실제로 뛰는 것은 선수들인데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준다." - 사단법인에서 하는 활동이 자선농구대회 말고도 많이 있다. "어린이 심장병, 다문화 가정, 농구 꿈나무 후원 사업을 한다. 내가 심장 수술을 받고 힘들어봤다. 그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어린이 심장병 후원을 하게 됐다. 요즘 다문화 가정이 워낙 많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1000여명 초청해 행사를 하기도 한다. 연관 단체가 함께 가서 다문화 가정 캠프를 한다. 그 때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농구 교실을 하면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려고 한다." - 후원하는 선수 가운데 눈에 띄는 선수가 있나. "선수로 뛰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어 농구부가 있는 학교를 소개해줬다. 지금 선수로 뛰는 선수가 있다. 아직 초등부여서 잘 모르겠지만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 농구 인기가 올라갈수록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수월할 것 같은데 어떤가. "처음 시작할 때는 농구 인기가 많이 떨어졌을 때였다. 농구가 아직 현실에 안주해있는 느낌이다. 국제대회 성적이 나와야 하는데 내가 선수로 뛸 때와 다르다. 사실 희망농구 자선경기를 시작할 때 농구를 위해서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농구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주 아닌가. 이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로서 먼저 해야 후배들이 본받고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먼저 하고 싶었다. 축구는 홍명보, 박지성이 하고 있었고, 야구도 박찬호와 양준혁이 했다. 나는 농구에서 처음 만들어 모범이 되고 싶었다.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지만 후배들은 한층 편하게 이런 활동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인기가 떨어졌을 때 농구가 이런 일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변을 넓히는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요즘 조금씩 농구 인기가 올라가는 것 같다. 다른 방식으로 농구 인기를 올리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 사단법인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어디인가.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해주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액수가 뻔하지 않는가. 행사를 할 때마다 대기업, 은행에 가서 후원을 요청한다. 후원금 만들기가 가장 힘들다.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다. 지난해보다 후원금 모금이 힘들어졌다. 경기가 좋지 않아 대기업이 이런 부분을 가장 먼저 줄인다. 그래서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이런 활동이 후배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보나. "이번이 6번째 자선농구대회를 했는데 후배 두 명만 후원을 했다. 아직 선수들이 기부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다고 본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인기를 그만큼 누리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 다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약한 점이다.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후배들을 선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 사회 전반에도 적잖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재능나눔을 했으면 좋겠다. '나눔은 특권이다'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특권이다. 자기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돈 많은 것도 재능이다. 농구, 피아노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만의 특권인 것이다. 그것을 나눠주는 풍토가 사회 전반에 조성됐으면 좋겠다." -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한기범 희망나눔이 가장 많은 재능나눔을 하는 법인이 됐으면 좋겠다. 더 많은 행사를 하고 싶다. 우리 사단법인 안정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눔을 먼저 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후원금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자립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쇼핑몰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많이 도움을 받았듯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나눔 활동을 하고 싶다. 내가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오지를 가장 많이 다녀왔다. 그런 곳의 실상을 직접 봤다. 그런 곳에 가서도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목표다." -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더 열심히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결국 경제적인 것이다. 경제적인 것이 중요하다. 사단법인 안정화가 중요하다. 자립을 위해 여러 사업을 준비 중에 있다." - 한기범에게 농구란 무엇이고 나눔이란 무멋인가. "농구는 나의 인생이고, 나눔은 희망이다." - 요즘 농구를 보는가.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친구 감독들에게 들어보면 우리 때 했던 농구를 못한다고 한다. 기술적인 농구를 못하고 단순하게 한다고 한다. 프로 선수들에게 피봇을 가르친다고 한다. 기본적인 기술이 없다고 한다. 외국인 선수가 너무 오래 있어서 국내 센터들이 성장하지 못했다고 본다. 더 빨리 한 명으로 줄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걸출한 스타가 없는 것도 아쉽다. 스타가 나타나야 농구 인기가 올라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