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 ″내가 가진 재능 나누며 살고 싶다″ *마르판증후군 극복하고 희망재단 설립...나눔의 삶 전파 📷 [아시아투데이=황보현 기자] 한기범 그는 2m5cm의 큰 키로 지난 1980년대 농구판에서 골밑을 휘어잡았던 토종센터의 산증인이다. 지난 1983년 프로에 데뷔해 1996년 농구코트를 떠날때까지 국가대표 센터 자리는 늘 그의 차지였다.
당시 같이 뛰었던 허재와 강동희 등은 프로 감독으로 데뷔하며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농구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다른 삶을 선택했다. 희귀병(마르판증후군)이 삶을 바꾸다 그는 두 번의 심장수술을 받으며 그때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건강이라면 자신있었던 그도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 앞에서 나약해졌다. 혹시 유전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마르판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 병은 15번 염색체 이상으로 보통 심혈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일종의 유전병이다. 지난 2000년 첫 번째 수술을 받은 한기범은 2008년 두 번째 수술을 받으며 위기를 넘겼다. 한기범은 “키가 크고 마른 사람들이 잘 걸리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19살 때 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걸 보고 나도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충격을 컸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수술비가 부담이였다. 그때 주변 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한기범 재단을 설립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나서고 있다. 한기범은 심장병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했다. “심장은 생명하고 바로 직결된 것이다. 기회가 될 때 마다 매스컴이라든가 언론을 통해서 위험성을 많이 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건강에 대해 물었다. 한기범은 “현역시절만큼 건강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술만 받으면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농구 유망주 발굴은 나의 임무 한기범, ″내가 가진 재능 나누며 살고 싶다″*마르판증후군 극복하고 희망재단 설립...나눔의 삶 전파 프로에서 은퇴를 한 한기범은 1997년 서울 구로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를 거쳐 1999년 중앙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약 3년동안 선수들을 조련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그는 “나는 가르칠 자신이 있었는데 주위에서는 카리스마 능력이 부족해 선수 장악능력이 없다고 평가를 했다”고 운을 땠다. 이어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어서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 하지만 그는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대신에 어린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한기범 농구교실을 열고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기범은 학교에서 체육시간을 없애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놀고 많이 활동할 나이에 오로지 공부만 하면 몸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농구는 단합이 중요해요. 개인종목이 아닌 5명이 하는 운동경기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단합을 가르칠 수 있죠. 즉 자기 혼자만이 아니고 여럿이 나눔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는 올해 희망재단에 주력을 할 생각이다. 이곳에 후원을 하는 회원은 대략 100~150명 남짓. 한기범은 더 많은 후원이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눔을 통해서 사회에 이바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할 일이에요. 또한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